수단 남부, 독립 후 전망 불투명

독립을 눈앞에 둔 남부 수단의 장래가 매우 불투명하다. 아직 국명이 정해지지 않은 이 신생국가의 미래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상당히 엇갈릴 수 있다. 비관적으로 보자면 포장된 도로가 100km도 안될 정도로 경제기반은 “Zero"에 가깝다. 세계 최빈국이 될 것이 분명하고, 당장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어 보인다. 반면 이미 분리 전부터 가동 중인 상당한 규모의 유전지대가 역내에 있기 때문에 시작하면서부터 세계적으로 순위 안에 드는 산유국으로 출발한다. 그러므로 이 석유 수입으로 들어오는 오일달러만 잘 활용하면 빠른 시일 내에 경제 건설이 가능하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직 정식 건국하기 전부터 정파적 이해에 따른 무장세력 간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정치적인 분열 등으로 갈등이 커 보인다.

이 지역을 모니터 하고 있는 UN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수 백 명이 정치적 분쟁과 갈등으로 사망했고, 9만 4천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인권적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월의 투표를 통해 분리 독립이 확정되었고, 지난 30년간 이들을 괴롭혀 왔고, 수 백 만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북부 수단으로부터의 폭력에서 해방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오는 7월의 정식 독립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남부수단 내부를 들여다 보면 그 안에도 여러 종족들이 이해관계로 얽혀 있고, 우간다에서 넘어온 주의 저항군 세력은 자신들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자신들이 통치하는 자치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북부에 살던 남부 출신 주민들이 대거 남부로 귀환하면서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사회에 큰 위기요소가 되고 있다. 때문에 여기 저기서 식량, 주거, 의료, 교육시설 부족으로 인한 불만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실제로 현지 소식통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북부에서 출발한 트럭이 아이들과 어른들을 가득 싣고 남부로 들어오는 장면이 쉴새 없이 눈에 띠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그 동안 경제적으로 윤택한 북부에서 노동을 했지만, 딱히 벌어놓은 것 없이 남부로 들어오기 때문에 최극빈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파키스탄 교회, 성경 소각 청년 용서하기로


최근 한 이슬람 신자가 카톨릭 성당 앞에서 성경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과 관련하여 교회 지도자들은 이 청년을 용서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당국에 대해서도 그를 선처해 줄 것을 당부했다. 회동을 가진 교회지도자들은 발표문을 통해 “파키스탄의 기독교인들은 이 청년의 행위에 대해 분노할 수 밖에 없었지만, 더 큰 갈등과 증오를 예방하기 위해 불문에 붙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파키스탄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싸우질 않을 것, 고통 속에서도 인내할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통에 함께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파키스탄, 14명의 남성으로부터 집단 성폭행 당하고 결국 패소한 여성


남동생의 잘못을 대신해 마을 남성 14명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파키스탄 여성 무크타란 마이(39·사진)의 9년에 걸친 기나긴 법정 투쟁이 사실상 패배로 끝났다. 21일 대법원은 피고 1명에게만 종신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전원을 무죄 석방했다.  마이는 파키스탄 역사상 최초로 성폭행 피해를 법정에 고발, ‘이슬람권의 잔다르크’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인물이다. 마이는 유럽위원회의 인권상 등 많은 상을 받았으며, 그의 자서전은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순위 3위에 오를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현지 유력 일간지 ‘더 돈(The Dawn)’은 21일 “수백년에 걸쳐 이어져온 부족사회의 폭압을 용기 있게 고발해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돼온 마이가 이번 판결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펀자브지방의 작은 마을 미르와라에서 타틀라 부족 일원으로 태어나 성장한 마이는 지난 2002년 마을의 실권을 쥐고 있는 마스토니 부족회의로부터 남동생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라며 집단성폭행 형에 처해졌다. 12세의 동생이 마스토니 부족 소녀와 ‘부당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극도로 보수적인 파키스탄 이슬람 부족사회에서 성폭행당한 여성은 자살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마이는 달랐다. 범인 14명을 처벌해달라며 법정투쟁을 시작, 지방법원으로부터 이 중 6명에 대한 사형선고를 이끌어낸 것. 비록 8명이 무죄 석방되기는 했지만 파키스탄 인권 사상 획기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2005년 고등법원은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6명 중 5명의 무죄를 인정했다. 마이는 좌절하지 않고 대법원에 즉각 항소했다.

대법원이 마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소녀의 오빠를 제외한 5명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뚜렷한 물증’, 즉 디옥시리보핵산(DNA)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변호인단은 “ 많은 마을 사람 湧?직접적인 증언을 무시한 대법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라며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미르와라를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며 여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는 로이터, AFP통신 등과 전화인터뷰에서 “석방된 남자들이 이곳으로 돌아와 나와 내 가족을 살해할 것”이라면서도 “나는 위대한 알라의 법정 이외에 어떤 법정도 신뢰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알라의 자비에 맡기기로 했다”고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영국 카나다, 수명 늘면서 종교 귀의 연령대도 높아져

사람들의 수명과 종교 성향에 대한 새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사람들이 은퇴를 늦출 뿐만 아니라 종교에 참여하는 성향도 줄어들고 있다.  영국에서 실시되어 국제 사회 경제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Economics)의 인터넷 판에 발표된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 수명이 높은 선진국에서의 종교 활동이 감소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수명이 연장되면서 사람들이 종교를 가질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고 종교 참여를 뒤로 미루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동 앙글리아 대학교(University of East Anglia)의 경제학자 엘리사이오스 파피라키스(Elissaios Papyrakis)는 여러 종교가 사후의 삶에 대해 연관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수명이 연장되면 사후의 삶에 대한 생각이 줄어들고 그리하여 종교 참여가 늦추어 진다고 설명했다.  캐나다에서 15세 이상 인구의 무종교 비율이 1971년 조사에서는 4%로 나타난 반면 2001년 조사에서는 16%로 늘어났다. 또한 매주 정기적으로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비율도 1985년 30%에서 2005년 21%로 낮아졌다. 반면 2005년과 2007년 사이의 캐나다인 평균 수명은 80.7세로 그로부터 10년 전 78.4세에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평균 수명이 낮은 개발 도상국에서의 종교 참여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의 온타리오(Ontario) 주(州)에 있는 Faith Christian Reform Church의 케빈 드라프(Kevn DeRaaf) 목사는 수명과 종교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 제도가 잘 발달되어 실제적인 도움을 받는 사회의 사람들은 종교적 신앙을 뒷전으로 미루어 둘 수 있다고 드라프 목사는 보았다.

또한 이번 연구 조사는 종교 단체들이 사후의 삶에 대해 강조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에서의 유익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즉 종교 기관이 사람들의 사회 활동 영역을 확장하도록 돕고, 다양한 활동으로의 참여를 제안하며,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조언을 해주는 것들이 이러한 예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드라프 목사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지만, 종교에서 사후의 삶은 중심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후의 삶에 대한 것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드라프 목사는 캐나다 교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도록 돕는 등의 사람들의 실제적인 문제에 도움을 주려는 시도를 하여 왔다고 소개했다. 사람들이 현재에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는 것은 더 큰 차원인 영원한 삶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드라프 목사는 강조했다.  캐나다 연합교단(United Church of Canada)의 지역 개발 사역 책임자인 로버트 달글레쉬(Robert Dalgleish) 목사는 종교는 항상 천국이나 지옥 보다는 현재의 삶과 더 연관되어 왔지만, 교회가 이러한 부분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종교는 삶에 대한 것이며 또 현재의 삶에 대한 것이라고 달글레쉬 목사는 강조했다.-Krim


미전도종족 Profile(일본)
Ainu People 아이누족
한 아이누족 남성이 러시아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몬이라는 도자기를 응시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인의 조상들이 이처럼 세련된 도자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이누족은 한 때 일본의 전체를 지배 했었던 민족이다.  한 러시아인 남성이 다가 왔다.  "혹시 아이누족 아니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여행차 여기에 왔습니다."  "이 도자기는 카미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카미는 아이누족의 신이지요?"  아이누족 남자가 답했다.  "저도 카미에 대해 들어는 봤습니다.  그러나 자세히는 모릅니다.  우리 조상들은 카미신을 섬겼는지 모르지만, 지금 저는 곰을 섬김니다."

아이누족은 일본인이지만 사할린에도 거주한다.  또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에도 아이누족이 조금 살고 있다.  그들은 순록을 치고, 물고기를 잡으며 산다.  최근 사할린에서 유전이 발견되는 등 아이누족도 현대문명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누족 사이에는 이렇다할 규모의 기독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1830년 이후 현재까지 아이누족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