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 선교소식
하나님은 언제나 가르치시기를 원하신다.
“사도 바울처럼 살리라”고 신념으로 다짐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주권자 하나님 되기를 원하셨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다음을 위하여 작은 돈을 모아 놓으면 다음 달엔 그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겼다. 계획을 세우며 살아 갈수가 없었다. 가게 부를 작성하고 규모 있고 계획성 있게 생활을 하는 것이 바른 것이라고 배우고, 습관처럼 살아가든 우리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특히 부족한 돈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혼란이 생겼다. 말과 생각으로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 합니다” 하면서도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나고 있는지 몰랐다.
“간장이 없어요!”라고 하는 이민아 선교사의 말을 듣고 교회에서 한 성도를 만났을 때 부끄러운 듯 작은 봉지를 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선교사님 왜 내가 이것을 샀는지 모르겠어요. 교회를 오면서 선교사님 생각이 나서 그냥 슈퍼에 들러 사게 되어요.”하며 주신 것은 짐작한 대로 작은 간장 한 병이었다. “집사님!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감찰하고 계심을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라고 답하였다.
호주에서 4년간 훈련을 받는 동안에 우리를 포함한 모든 선교사 훈련 학생들은 한 슈퍼마켓의 도움으로 살았다. 유효기간이 지난 모든 물품과 음식이 선교센터에 들어왔고 빵 가게에서는 매주 토요일 저녁 빵을 더 만들어 팔 수 없는 빵과 함께 선교센터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농장에서는 비바람에 떨어진 과일을 보내 주었다.
작은 아들 성훈이가 참치를 좋아하였는데, 감사하고 놀라운 일은 매주 음식을 가지려 갈 때마다 참치 깡통이 들어와 있었다. 유효기간 날짜를 보니 아직 남아 있는데 왠 일인가 하여 살펴보니 깡통의 한편이 찌그러져 있었다. 상점에서 누군가 깡통을 떨어뜨려서 상처가 생겨 팔리지 않는 것이 유효기간이 지난 것으로 처리되어 들어온 것이었다. 매주 참치깡통을 손에 들고 기숙사로 돌아 오면서 주님께 언제나 참치를 먹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성훈이의 기도가 응답되고 있음을 알게 하셨다. “언제나 신실한 성도를 통하여 참치를 진열대에서 떨어트리는 주님 감사합니다.”
가족의 필요를 위하여 기도하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하겠다며 과일 농장에서 일을 하였다. 다른 사람은 과일 따는 일을 시키고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청년과 함께 말 똥을 치우는 일과 섭씨35도가 넘는 무더위에 비닐 옷을 입고 농약을 뿌리는 일, 개간을 위하여 돌을 치우는 일을 시켰다. 2주가 지나자 몸이 따라가지 못하여 병으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한국을 떠날 때 큰아이는 중학교 1학년, 둘째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큰아들 성민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아버지 외국에 가면 은행에 돈이 있어요?”
“외국에는 아버지 돈이 없단다.”
“아버지 외국에서 컴퓨터 일을 하실 건가요? “
”아니 다시는 아버지는 돈을 벌지 않을 것이란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학교를 다니지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버지가 너희들이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하나님을 더 잘 알고 계시단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연하였다.
이 말을 듣던 성민이는 얼굴을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럼 아버지 누가 우리 신발을 사주지요?”
1992년 그 시기는 마이클 조던 신발이 아이들에게는 우상과 같았다.
아무 답을 하지 못하고, 아이를 품에 안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무엇을 취하려 함이 아니라. 나누려 함입니다. 이 마음을 주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니 응답하시옵소서”라며 기도했던 일이 생각이 났다.
부끄러움과 나약한 믿음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리고
농장 주인이 보내준 2주간의 주급이 든 봉투를 그대로 농장 주인에게 다시 돌려 보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인내하게 되었다.
어느 날 큰 아들 성민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보험회사로부터 청구서가 날아왔다.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전 목사님 한 분이 사모님과 함께 기숙사를 찾아 와. “그 동안 아내가 재봉일을 하여 공부를 하였는데 공부가 끝나 재봉틀을 팔아 기도하던 중 선교사님 생각이 나서 순종하며 찾아 왔습니다. 헌금을 선교헌금으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하며 주셔서 헌금을 받아 책상에 놓고 다음에 필요할 때 사용 하리라 하며 두었던 것이 생각이 나서 목사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상황을 설명한 후. 목사님이 주신 선교헌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목사님은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는 말씀이 응답되는 곳에 쓰임 받음을 감사합니다. 필요하신 대로 사용하십시오”하며 기뻐하셨다.
봉투를 열어보고 세어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도 모르게 돈을 책상에 던지고 자리에 주 져 앉으며 두려움이 생겼다. 예전에도 여러 번 같은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청구금액과 동일한 금액이 들어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과 마음을 언제나 감찰 하고 계셨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일어났다. 나에게 속한 마음과 생각이라고 얼마나 마음대로 하였던가. 성경을 읽을 때도 눈으로만 글을 읽고 마음과 생각으로는 다른 생각에 가득하기도 하고, 기도 할 때도 입으로는 기도하면서 마음과 생각은 다른 것을 행하는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죄인 인 것을 알게 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양심이 다 들어나서 피할 길이 없게 하셨다.
매일 해와 달을 만나며, 숨을 쉬고, 자연과 함께 시간 속에서 삶을 영위하며, 미래의 계획과 소망과 희망을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손길인지를 모르는 우둔한 죄인이었다.
언제나 하나님만을 의지 하도록 삶 속에서 가르치시고 있는데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내 의지 안에서 세상의 방법으로만 생각하는 우둔한 죄인임 알게 하셨다.
주님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관섭하고 있으며 인도하고 계시며 가르치시고 있다는 사실을 깊게 알게 하셨다. 주님의 임재를 가슴 가득히 안고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죄를 자복하였다. 그날 이후 묵상과 기도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며 무의식 속에서 지났던 일들에 많은 묵상을 통하여 민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내려 놓을 수 없는 죄인이,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포기 할 수 없는 죄인이,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희생 할 수 없는 죄인이
선교사가 무슨 신용카드를 사용하겠느냐며 신용카드를 버렸던 일, 내 소유라고 남에게 믿음 없이 나누어 주었던 것이 얼마나 교만이며 자기 만족의 행위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려 놓은 것이 없고, 내려 놓을 능력도 없는데, 무가치한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내려 놓았다고 자만하며 내 의지와 생각대로 행했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부르셨으니 우리 가족을 돌봐 주십시오! 아비로써 자식과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지난 18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감찰하셨다. 십자가의 주님을 알게 하셨으며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죄인을 긍휼로 인도하셨으며 은혜 안에 있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감찰하심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다. 물질이 너무 부족하여 넘어 지지 않게도 하셨으며 너무 많아 고만하게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채우시며 일용할 양식을 채우셨다. 오직 영광과 존귀를 받기를 원하시는 주님, 언제나 우리의 삶의 중심이며, 삶의 원동력이며 감격이며 주님은 긍휼로 감찰하시며 눈 동자처럼 돌보고 계시다.
때로는 우리를 소개할 때 “죽을 각오를 가지고 파푸아뉴기니 정글로 가신 선교사를 소개합니다”라고 소개를 한다. 그러나 죽을 각오와 신념으로는 주의 일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죄인의 의지와 신념과 전통과 신비주의 속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 삶에 응답된 성도만이 주의 일을 할 수가 있다. 아니 선이 없는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다만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순종할 수 있는 긍휼로 인하여 가능하다. 그래서 주의 일에 도구가 되어 참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가치를 세우며 누리는 기쁨과 감격을 알게 되는 변화된 속사람 그리스도인의 참된 인격으로 성숙하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피와 함께 자아가 죽은 자 만이 누리는 참된 가치관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파푸아뉴기니, 코라 부족에서 문 성(NTM 소속)

